카레이싱은 스포츠 중 기계의존도가 가장 높다
카레이싱은 인간이 생각해낸 스포츠 가운데 기계에 대한 의존도가 가장 높다. 레이스 자체가 차의 성능을 견주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되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기술이 발전할수록 사람의 중요성이 커지게 되었다. 아무리 강한 차를 만들어도 이를 다룰 사람이 없다면 무용지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빼어난 경주마(競走馬)에 뛰어난 기수가 있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1930년대 최고의 명경주차인 ‘아우토 유니언(Auto Union, 현재의 아우디)’의 타입 A’와 ‘타입 B’가 좋은 예다. 자동차 천재로 불리는 페르디난트 포르쉐 박사(Dr. Ferdinand Porsche)가 고안한 이 경주차들은 운전석 뒤에 엔진을 둔 획기적 기술로 눈길을 끌었다. 차 뒤쪽에 엔진을 두는 리어 엔진(Rear Engine) 방식은 현재의 모든 포뮬러 경주차에 쓰일 만큼 이상적인 배치로 자리를 잡았지만 당시로서는 뚱딴지같은 발상이었다. 엔진이 뒤에 얹히면 무게 중심이 달라져 가파르게 휘어진 코너도 빠르게 정복할 가능성이 있었지만 약점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 같은 방식의 자동차를 몰아 본 사람이 없어 가속 페달이나 브레이크 조작에서 조금만 실수를 해도 오히려 차체가 심하게 요동을 치며 중심을 잃었다. 아우토 유니언은 앞선 기술을 가지고도 이를 성과로 연결시키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해결책은 기계가 아닌 ‘사람’이었다.
1935년 홈 구장격인 독일 그랑프리에서 이탈리아팀 알파 로메오(Alfa Romeo)에 패한 아우토 유니언은 이듬해 의외의 인물을 드라이버로 기용한다. 오토바이 레이서 출신인 번트 로즈마이어(Bend Rosemeyer)였다. 로즈마이어는 자동차 경주 경험이 전혀 없었지만 탁월한 균형감각으로 리어 엔진에 뒷바퀴가 구르는 타입 B를 손바닥 뒤집듯 다루었다. 결국 1936년 유럽 챔피언은 아우토 유니언과 번트 로즈마이어에게 돌아갔다.
1936년 당시의 타입 B는 배기량 6ℓ에 최대 출력이 350마력이었다. 최근의 포뮬러 원 경주차는 이보다 작은 3ℓ 엔진으로 870마력 이상의 힘을 낸다. 요즈음 레이서들은 두 배 이상 출력 높은 차를 다루어야 하는 셈이다. 최고 속도 역시 당시보다 빨라진 시속 350km에 이른다. 현가장치(서스펜션, suspension)와 차체 안정 시스템의 진화로 전보다 차를 몰기 쉬워졌다는 주장도 있지만 시속 300km가 넘는 하이 스피드는 여전히 보통 사람이 쉽게 넘을 수 있는 문턱이 아니다.
레이서의 특별한 신체적 능력
경주차가 점점 빨라지면서 차를 모는 인간의 신체적 능력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이 궁금증은 ‘레이서’ 라는 아주 특별한 직업의 비밀을 푸는 열쇠이기도 하다.
시계를 현재로 돌려 오늘날의 레이싱 드라이버들에게 주어진 가혹한 운명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전 세계 최고만 모인다는 포뮬러 원 경주차의 운전석은 누구나 꿈꾸는 자리지만 결코 안락하지는 않다.
콕핏(Cockpit)이라 불리는 F1 머신의 조종석은 이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의자 가운데 하나다. 드라이버의 등 뒤에는 엔진이 있고 발 앞에는 1,000℃ 이상까지 뜨거워진 카본 브레이크가 달려 있다. 주변 기온이 30℃ 정도(그랑프리가 열리는 지역의 평균적인 온도)라 해도 이보다 뜨거운 아스팔트의 복사열은 낮은 차체의 경주차에 쉽게 전도된다. 이런저런 악조건들을 합하면 콕핏의 온도는 낮게 잡아도 40~50℃에 달한다.
더구나 드라이버들은 만일의 화재에 대비해 불에 타지 않는 특수 소재인 ‘노멕스(Nomex)’로 만든 두툼한 옷을 입고 있다. 한여름에 내복과 오리털 점퍼를 입고 한증막에 들어간 것과 다를 바 없다. F1 레이서인 후안 파블로 몬토야(Juan Pablo Montoya, 콜롬비아)는 경기에서 내부 온도 과열로 엉덩이에 화상을 입었을 정도다.
2시간 정도 한증막에서 버틴다고 해서 레이서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고속 주행이나 회전시 원심력에 의해 F1 드라이버가 받는 중력가속도(G포스)의 압력은 최대 4G에 이른다. 특별한 훈련을 받지 않는 이상 일반인은 3.5G면 바로 기절한다. 악명 높은 롤러코스터라도 2G 정도의 압력만으로 나들이 객의 입에서 비명을 이끌어낸다는 점을 감안해보면 어느 정도 상황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드라이버들은 지구 중력의 4배에 달하는 힘을 온몸으로 견디면서 마우스로 그림을 그리듯 정밀한 작업을 수행해야 한다. F1 모나코 그랑프리에 참가한 레이서들은 평균 2,000번 이상 기어를 바꾼다. 때에 따라 레이싱카 핸들에 달린 복잡한 조절 장치들로 브레이킹 밸런스와 댐퍼 세팅까지 한다. 핸들 조작은 또 어떤가. 파워 스티어링 대신 ‘파워핸드(power hand)’가 필요하다. 시속 300km의 속도에서 핸들을 조작할 때는 20kg의 물체를 드는 것과 같은 힘이 필요하다.
경기 중 드라이버의 심장은 분당 185회 정도로 빠르게 뛴다. 전투기 조종사가 음속 비행을 할 때 받는 스트레스와 비슷한 수준이다. 경주가 끝난 뒤 보통 3kg가량 몸무게가 줄어든다. 최고의 다이어트 비법이라 할 수 있다. 참고로 테니스 경기를 2시간 정도 했을 때는 평균 2kg이 빠진다.
아직 신체적인 조건이 갖춰지지 않은 초년생 드라이버가 머신을 몰고 2시간 정도 달리고 나면 근육이 긴장해 팔을 제대로 들어올리지 못하기도 한다. 또 입을 다물고 집중한 탓에 턱 근육이 풀어져 물을 마셔도 줄줄 밑으로 새는 꼴불견 신세가 될 수도 있다.
다행히 일년 내내 이 같은 악조건 속에 살다 보면 신체도 이에 적응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진화한다. G포스를 집중적으로 견뎌야 하는 F1 드라이버들의 목 근육은 봅슬레이 선수보다 20% 정도 더 발달했다.
시력도 일반인과는 다르다. 거리 측정의 정확성, 명암 구분 능력, 먼거리와 가까운 거리의 초점을 순간적으로 정확히 맞추는 능력 등이 빼어나다. 50cm앞 계기판을 보다가 갑자기 100m 전방으로 눈을 돌려야하는 긴장의 순간 속에서 얻게 된 능력이다. 유명 카레이서인 미하엘 슈마허(Michael Schmacher)는 경주차를 몰면서 대형 TV 화면에 나오는 라이벌의 주행 모습과 자막으로 처리된 기록도 읽을 수 있다고 한다.
심장과 다리 근육도 발달한다. 앉은 자세에서 급가속과 감속을 반복하다 보면 피가 하체로 쏠려 다리가 주체 못할 만큼 무거워지는 증상을 겪는다. 이것이 바로 F1병이라 불리는 ‘헤비 레그 증후군(Heavy Leg Syndrom)’이다. 피가 몰리는 것을 막으려면 심장이 더 강한 펌프질을 하는 수밖에 없다.
뛰어난 두뇌 능력도 레이서의 기본 조건이다. 육상 선수처럼 단지 앞만 보고 달려 이길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라이벌이 어디까지 따라왔는지, 경주차의 상태가 나빠질 가능성은 없는지, 혹시 비가 내린다면 타이어를 언제 바꾸는 것이 유리할지, 남은 연료량으로 달릴 수 있는 거리는 어느 정도인지를 끊임없이 계산해내야 한다.
F1이 아닌 다른 경기에 참가하는 드라이버 역시 해당 종목에 맞는 능력을 발달시켰다. 르망 24시간 레이스 참가자들은 생체 리듬을 마음대로 조절하는 능력이 있는 듯하다. 24시간을 꼬박 달려야 하는 이 대회는 한 사람이 계속 운전을 하지 못하므로 보통 3명의 드라이버가 교대로 차를 몬다. 레이스를 마친 드라이버는 자신의 차례가 돌아올 때까지 휴식을 취한다.
최고의 휴식은 잠을 자는 것. 경주차의 굉음이 울리는 경기장 한가운데서 눈을 붙이고 잘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레이스의 집중력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내구 레이스의 왕자 톰 크리스텐센(Tom Christencen)이르망 24시간 레이스에서 7번이나 우승한 비결도 바로 잘 쉬는 신체 리듬 조절 능력에 있었는지 모른다.
랠리 드라이버는 균형 감각이 남다르다. WRC 경주차는 F1 머신만큼 빠르지 않다. 그러나 불규칙한 비포장도로에서 무게 중심을 잃은 경주차를 바로잡는 순간적인 판단력은 랠리 드라이버가 앞선다. 잔자갈이 깔린 길이나 진흙길 위에서 미끄러져본 사람은 비포장도로에서 주행 안정성을 확보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다.
랠리 드라이버들은 옆으로 미끄러진(이를 ‘드리프트’ 라고도 한다) 차가 언제쯤 중심을 잡아 앞으로 나갈 수 있을지 정확히 예측한다. 이들이 낭떠러지 끝을 불과 4~5cm 남겨두고 질주하는 것은 마치 목숨을 건 서커스와 같다. F1 스타 미하엘 슈마허가 2004년 WRC 챔피언인 스바루 팀 피터 솔베르그(Petter Solberg)의 경주차 조수석에 동승한 뒤 “랠리 챔피언이 F1에 진출하는 것이 F1 챔피언이 랠리에 나서는 것보다 훨씬 유리하다”고 말한 일화는 유명하다.
카레이서들은 이 같은 다양한 능력을 바탕으로 인류에게 빠르게 성장하는 기계문명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안겨주고 있다. 이는 인간과 기계의 가장 멋진 조합이 바로 모터스포츠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다.
기록의 사나이 미하엘 슈마허
F1 황제 미하엘 슈마허는 모터스포츠 역사상 가장 성공한 드라이버다. 연간 8,000만 달러(약 800억 원) 이상을 벌어들이는 사나이. 데이비드 베컴이나 타이거 우즈 등을 따돌린 스포츠 재벌, 호나우두 등 국제적인 스타들을 초청해 자선 축구 경기를 벌이는 글로벌 인맥, 동남아시아 쓰나미 피해 때 선뜻 100억 원의 거금을 기부한 자선가 등으로 우리나라에는 레이서 이외의 이미지로 신문지면을 더 많이 장식한 인물이기도 하다.
슈마허는 자동차 경주의 최고봉인 F1의 역대 주요 기록을 보유하며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린다. 통산 7회의 세계 챔피언 기록(1994, 1995, 2000~2004)은 앞으로 수십 년 이상 깨지지 않을 불멸의 경지다(2005년 현재). 1950년대의 유명 레이서 후안 마뉴엘 판지오(Juan Manuel Fangio)가 다섯 차례 챔피언 자리에 오른 기록을 달성한 뒤 슈마허가 이를 깨기까지 거의 50여 년이 걸렸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기록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슈마허는 이 밖에 역대 최다 우승, 역대 최다 득점, 한 시즌 최다 우승 등 손으로 헤아리기 힘들 만큼 많은 기록을 가지고 있다.
슈마허는 1969년 1월 3일에 태어났다. 별자리로 따지면 염소자리다. 염소자리의 수호신은 시간을 관장하는 신 ‘크로노스’. 그래서 시간을 다투는 레이서가 되었는지 모른다. 독일 라인 강 인근 소도시 케르펜(Kerpen)이 고향인 슈마허는 그다지 유복하지 않은 가정에서 자랐다. 경제적으로만 유복하지 않았을 뿐 아버지는 그의 재능을 일찌감치 알아보았다. 4세 때부터 유아들이 타는 카트(Kart)를 몰며 드러나기 시작한 아들의 재능을 알아본 것이다. 서양판 ‘맹모삼천지교’ 라고나할까, 아버지 롤프는 아들을 위해 카트(미니 경주차) 경기장 매니저로 이직했다. 어머니 엘리자베스도 서킷 인근에서 샌드위치와 음료수를 파는 상점을 열어 슈마허를 뒷바라지했다. 현역 F1 레이서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동생 랄프 슈마허도 이때부터 형과 함께 레이스를 배웠다. 가난했기 때문에 남들이 쓰고 버린 타이어를 끼우고 나올 정도였지만 유소년 리그에 슈마허를 당할 경쟁자는 없었다. 22세에 F1 레이서가 된 슈마허는 데뷔전에서 예선 7위로 자신의 이름을 알린 뒤 불과 3년 만에 세계를 제패했다. 베네통(Benetton)팀(현재 르노팀의 전신)에서 1994년, 1995년 연속 월드 챔피언이 된 슈마허는 이후 페라리(Ferrari)로 옮거 5회의 챔피언 기록을 더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레이서가 된 슈마허에 대한 분석은 다각적이다. 천성적인 스피드 감각, 예리한 판단력, 흔들리지 않는 자신감 등 갖가지 이유들이 제시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슈마허가 드라이버에게 필요한 육체적·정신적 능력의 중요성을 부각시킨 인물이라는 점이다. 1991년 한 레이스를 마친 뒤 경주차에서 내린 슈마허를 본 사람들이 놀랐다. 땀을 많이 흘리지 않은 가뿐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그의 육체 관리법에 대한 호기심이 일었다.
슈미히는 매일 오후 1시에서 2시 사이에 다양한 방식으로 웨이트 트레이닝을 한다. 시차를 무시한다면 현지 시간으로 그랑프리 레이스가 열리는 시간대다. 슈마허는 또 이탈리아 피오라노(페라리팀의 전용 테스트 서킷)에서 테스트를 하는 날이면 가끔 텔레비전으로 영화 보는 것을 즐긴다. TV 시청이야 누구나 좋아하겠지만 차이가 있다면 특별히 제작된 무거운 헬멧을 쓰고 본다는 점이다. 목 근육을 단련하기 위해서다.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