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키 스트라이크, BAR 혼다팀이 모빌원 독일 그랑프리 예선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미쉐린 타이어의 성능을 효과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말보로 스쿠데리아 페라리팀보다 앞선 것에 만족합니다. 내일 결승은 물론 일주일 뒤에 열리는 포스터스 브리티시 그랑프리까지 좋은 분위기가 이어지길 바랄 뿐입니다.”
150여 개 국가에 중계되는 방송 인터뷰에서 F1 드라이버는 온몸에 상표가 붙은 옷을 입고 이런 식으로 말을 한다. 단 10초 만에 7개 기업이 등장했다.
카레이싱은 스포츠 마케팅을 가장 먼저 도입한 스포츠 종목 가운데 하나다. 팀의 운영, 드라이버의 모든 움직임이 치밀한 자본주의 시스템 아래 관리된다. 돈이 있어야 빠르고, 빨라야 돈을 벌기 때문이다. 카레이싱의 세계에서는 ‘라면 먹고 죽어라 연습해 세계를 제패했다’는 식의 어설픈 헝그리 드라마는 존재하지 않는다.
F1의 사례로 돌아가보자. 최근 F1계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토요타(Toyota)팀의 연간 예산은 2억 9,900만 달러다(2005년 기준). 우리 돈으로 약 3,000억 원이 넘는 거금이 단 2대의 경주차를 19ef ICHELIJINMILDSEVENRENAULTLonso 2005년 F1 챔피언 페르난도 알론소, 레이서의 옷에는 큰 돈을 낸 후원기업의 상표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회의 경기에 내보내기 위해 투자된다. 단순한 계산으로는 경주차가 1분 달리는 데 1,300만 원이 드는 셈이다.
F1 한 개 팀의 예산으로 야구, 축구, 농구를 포함해 한국의 모든 프로스포츠 구단을 운영할 수 있을 정도다(프로 야구 삼성 라이온스의 연간 예산은 400억 원 정도다).
3,000억 원대의 자금을 동원하는 팀은 토요타를 비롯, 페라리, 매클래런 등이 있고, 르노(Renault), 윌리엄스(Williams), BAR 혼다(BAR Honda) 등은 2,500억 원 안팎의 예산으로 운영된다.
최하위팀 미나르디(Minardi)는 연간 460억 원의 적은 예산으로 움직인다. 자본주의의 속성이 그렇듯 모두가 평등하게 돈을 쓰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약자의 대반전을 기대하고 싶지만 아쉽게도 이 같은 예산의 차이는 경주차 개발 비용의 차이로 이어져 곧바로 성적에 반영된다.
레이싱팀들은 어떻게 이런 거금을 만들 수 있었을까? 대부분의 모터 스포츠 경기에는 상금이 걸려 있지만 어디까지나 형식적이다. 나스카(NASCAR) 등 미국식 자동차 경주는 상대적으로 상금을 많이 부각시키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팬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한 마케팅일 뿐 상금을 받아 레이싱팀을 운영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결국 99%의 운영 자금은 기업의 투자로 충당된다. 자동차 경주의 주인공인 완성차 회사나 타이어 메이커, 그리고 카레이싱을 광고에 이용하려는 일반 기업의 후원금이 주된 돈줄이다.
이 때문에 경주차, 드라이버의 복장, 경기장의 주요 시설물 등 눈에 띄는 모든 곳이 기업의 상표로 도배되고 있다. 심지어 서킷 바닥에 상표를 그리는 아이디어도 나왔지만 길이 미끄러워진다는 항의에 따라 지금은 활용되지 않는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드라이버가 입는 것, 마시는 것, 착용하는 것 등은 모두 스폰서에 따라 결정된다. 심지어 우승 뒤 시상대에서 터뜨리는 샴페인까지 돈을 내는 후원사의 제품일 정도다.
레이싱팀들이 처음부터 남의 돈을 받아 경기를 치렀던 것은 아니다. 1900년대 초반, 자동차 경주가 갓 시작될 당시에는 귀족이나 부자들이 주말을 즐겁게 보내기 위해 돈을 내고 경주차를 몰았다. 서양에서는 이를 ‘젠틀맨 드라이버 시대’ 라고 듣기 좋게 말한다.
이후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면서 주로 자동차 제조사들의 자본이 경기를 움직이는 돈줄이 되었다. 일부는 아예 차를 만들어 팔아 경기 자금을 마련했다. 페라리팀이나 로터스팀이 그 예다.
스폰서의 개념이 처음 등장한 때는 1968년이다. 당시 영국 로터스팀의 오너인 콜린채프먼(Colin Chapman)은 더 이상 자기 주머니에서 경기운영 자금을 마련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다. 혁신적인 자동차 만들기에 천재였던 그는 다시 한 번 독창성을 발휘해 영국 내 100대 기업 소유주들에게 편지를 띄웠다. 담배회사인 골드 리프(Gold Leaf)가 이에 관심을 보였고, 결국 1968년 짐 클라크(Jim Clark)와 그래이엄 힐(Graham Hill)을 태운 두 대의 로터스 머신은 이전까지 사용하던 브리티시 그린 컬러(LAP 6의 피트 스톱 코너 참조)에서 황금색으로 바뀌었다.
이후 유럽 자동차 경주의 스폰서십은 미국에 뒤지지 않을 만큼 발전했다. 오늘날 F1 경주차의 뒷날개나 옆구리에 기업 상표를 붙이는 대가로 받는 돈은 연간 500억원에서 600억 원 사이로 알려져 있다(F1팀은 후원금액을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는다). 경주차에서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이니 만큼 비싼 값을 치러야 한다. 이 자리를 차지하는 기업이 바로 팀의 타이틀 스폰서다. 이 기업들의 이름은 팀의 공식 명칭이 된다. 예를 들면 ‘마일드 세븐(Mild Seven) 르노’와 같은 식으로 팀의 모든 공식 문서와 표기에 후원사의 이름이 붙는다.
세계 시장을 상대로 프로모션이 필요한 기업들이 주로 F1팀의 타이틀 스폰서 자리를 노린다. 과거에는 브리티시 아메리칸 토바코(BAT)나말보로(Marlboro), 마일드 세븐, 웨스트(West) 등 담배회사들이 주로 이 자리를 차지했다. 그러나 2005년 7월부터 유럽에서 담배 광고를 할 수 없게 되면서 파나소닉(Panasonic), 휴렛팩커드(Hewlett-Packard)와 같은 전자회사나 이동통신회사들이 새로운 돈줄로 떠오르고 있다.
가끔은 엉뚱한 스폰서가 나타나기도 한다. 관광객 증가를 노린 말레이시아는 F1 자우버(Sauber) 팀에 콸라룸푸르 홍보 문구를 넣는 타이틀 스폰서를 하고 있다. 이는 국가 정부가 F1 후원사로 나선 첫 사례다.
F1을 통해 영화를 홍보하기도 한다. 2005년 모나코 그랑프리에서는 할리우드 영화 <스타워즈 에피소드 3>의 제작사가 레드불(Red Bull) 팀에 후원했다. 당시 연료를 보충하고 타이어를 손보는 미캐닉(Mechanic;정비요원)들이 영화 속 캐릭터인 다스베이더와 클론 병사의 옷을 입고 나와 화제가 되었다.
F1팀은 이처럼 굵직한 타이틀 스폰서 말고도 10여 개 이상의 기업과 손을 잡고 있다. 작은 스폰서들은 연료, 옷, 전자부품 등을 팀에 공급하거나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스티커를 붙이는 대가로 돈을 지불한다. 싼값이라 해도 현물을 포함, 150억 원 이상은 내야 한다. F1 르노팀에서는 한국 기업의 상표도 찾아볼 수 있다. 대한항공으로 유명한 한진그룹이 이 팀을 후원한다. 드라이버 개인을 후원하는 기업도 많다. 미하엘 슈마허 같은 경우는 개인 스폰서만 10여 개 기업에 달해 광고로버는 돈이 연봉보다 많다.
F1과 관련된 산업도 번창하고 있다. 단지 모형 경주차나 장난감, 의류 등을 파는 머천다이징 시장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매클래런, 윌리엄스, 자우버, 레드불, BAR, 조단(Jondan) 등 F1 참가팀의 60%가 몰려있는 영국의 경우 자동차 경주가 하나의 산업군을 이룬다.
영국에서 레이싱과 관련된 기술이나 부품을 개발하는 회사는 2,000개 이상으로 3만 명 정도가 일하고 있다. 이들 회사가 벌어들이는 돈은 연간 6조 원에 이른다. 6조 원이라면 한국 내 모든 은행의 반년 동안 순이익을 합한 규모다. 영국은 자국 내 자동차 브랜드가 없는데도 고부가 가치 레이싱 엔지니어링 산업을 발전시켜 기술과 수익 면에서 세계 어느 나라도 부럽지 않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이보다 못하긴 하지만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서도 레이싱 관련 기업들이 전문 기술로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자동차 경주로 돈이 몰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F1의 사례에서 알 수있듯이 기업들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레이싱의 파급력을 이용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F1 그랑프리를 보는 관중과 TV 시청자의 수는 올림픽, 월드컵에 밀리지 않는다. 그래서 이들 대회를 가리켜 세계 3대 스포츠 행사라고 한다.
F1의 가치가 급상승한 것은 이 대회의 상업적 권리를 갖고 있는 영국 FOM(Formula One Management)의 버니 에클레스톤(Bernie Ecclestone) 회장이 1970년대에 TV 라이브 중계를 도입하면서부터다. 현재 100개 이상의 TV 채널이 F1 경기를 생중계하거나 녹화 방송한다. 한국의 경우 MBC ESPN이 중계권을 갖고 있다. 이들 가운데는 여러 나라를 커버하는 위성채널도 있어 실제 F1 가시청권 국가는 150개국이 넘는다. 현장 취재를 하는 종이 매체도 500개 이상이다. 특히 대부분 통신사가 실시간으로 뉴스를 전송하고 있다.
전 세계를 상대로 자사의 상표를 알리거나 물건을 팔고 싶은 기업들에게 이보다 효과적인 마케팅 기회는 없다. 4년마다 열리는 월드컵이나 올림픽과는 달리 F1은 매년 19차례나 치러진다. 많은 돈을 지불해 후원사가 되더라도 결코 손해를 보지 않는다.
특히 자동차 관련 기업의 경우 충성도가 높은 고객층을 카레이싱을 통해 가장 쉽게 확보할 수 있다. 그랑프리 팬들은 자동차 엔진오일 하나를 교체할 때에도 페라리팀이 쓰는 쉘 엔진오일이나 윌리엄스팀이 쓰는 캐스트롤 엔진오일 등 경기에 참가한 후원사 제품을 선호한다. 실제 제품과 레이스에 쓰이는 제품이 100%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리만족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 같은 즉각적 마케팅 효과는 다른 어떤 스포츠 종목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카레이싱만의 특징이다.
예를 들어 아디다스나 나이키 같은 스포츠 제품 제조사들은 강력한 마케팅 활동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이들이 만드는 축구공이 승부를 결정하는 요소는 아니다. 반면 자동차나 부품 기업들은 카레이싱을 통해 기술력을 입증하고 이를 ‘판매’로 연결시킬 수 있다.
한국은 아직 모터스포츠 마케팅이 활발하지 않다. 따로 설명할 BATGT 챔피언십 등 프로 자동차 경주 리그가 있지만, 어디까지나 국내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로컬 이벤트여서 참여 기업의 수나 투입되는 자본의 규모는 F1에 비교가 되지 않는다.
한국의 정상급 프로 레이싱팀의 연간 예산은 10억 원 정도로, 아직 다른 종목 프로 스포츠팀에 못 미친다. 이는 관련 자동차 기업의 경쟁이 유발되지 않은 까닭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금호나 한국타이어 등 타이어 제조사가 세계를 무대로 한 모터스포츠 마케팅에 눈을 돌리고 있어 앞으로의 전망은 밝은 편이다.
참조 : 체력의 한계에 도전한 여성 카레이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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